글 작성자: 취업중인 피터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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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선물로 받은 책이다. 난 선물로 책을 받는 게 참 좋다.. 읽는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책은 빠르게 재미있게 읽었다. 역시 난 인문학을 좋아하는 거 같다. 초등학생 떄부터 철학 책을 찾아 읽었으니..

마흔에 읽는 니체는 장재형 작사님이 마흔에 니체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정리하여 쓴 책이다.

마흔에 격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니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나에게 다가왔다.

물론 나는 마흔은 아니다. 아직 27살 아직 마흔을 생각하기에는 조금 먼 나이이다.

하지만 마흔에 격는 문제와 이십 대에 겪는 문제의 마음의 원리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너가 뭘 알아! 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결국 문제의 원리는 비슷하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니체가 나에게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그리고 평소에 니체에 관심이 없진 않았다. 영원 회기라던가..힘에의의지 라든가 여러 가지 단어들은 들어봤다.

그놈의 니체.. 한번쯤은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어떤 책으로 입문할까 하다가 이 책을 골랐다.

바로 니체 책을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고 누군가가 설명해주는 책을 읽고 싶어서 골랐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감사에 마음을 전한다.

 

 

 

 

 

"자신을 원하라, 그러면 너 자신이 된 것이다."

 

나 자신을 원하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는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오직 비교만 가능할 뿐

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름은 그저 부르는 명칭일 뿐이고 특징은 누군가와 비교했을 뿐이다. 다른 무언가가 없이 나 자신을 설명할 수는 없다. 즉, 나라는 "존재"는 내가 결정한 것, 내 마음에 있는 것, 선택에 따라 정의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나 자신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 자신을 원하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운명을 선택할 자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내 운명은 내가 무엇이 될지에 대한 기대보다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 진다.

즉, 나, 지금, 우주, 전체, 하나는 모두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이것은 니체 철학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내가 선택한 행위에 대한, 나의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면 현재의 문제, 고통 또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열정이라는 감정은 항상 고통과 기쁨을 함께 동반한다"

 

내가 가장 깊이 공감한 내용이다. 나는 무엇가의 정말로 진심으로 열정적 인적이 있었는가? 그것을 너무 사랑해서 그 외의 고통을 동반할 수 있었는가? 그것을 하는 것이 내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나는 니체가 참 예술가적인 마음 가짐을 가지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참 낭만적이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

현재는 고통스러워도 죽은 후에 행복할 것이라는 그때 당시 이분법적 사상을 부시고 새로운 영원회기적 사상, 현재의 집중하게 만든 니체, 난 그런 니체가 참 좋다.

 

 

 

"기독교 적으로 니체 사상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나는 기독교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로 신을 죽인 사상가로 유명하다.

내가 뭐 뛰어난 교수나 공부를 많이한 신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니체 사상을 기독교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과거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를 희생해서 죽은 후의 보상에 집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에 관한 것들이 많이 희석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이 많다.

에덴은 해석하면 기쁨이다. 우리는 에덴에서 나와서 에덴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희생, 고통, 슬픔을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곳인가? 에덴으로 가는 과정은 모두가 가기 싫어하고 힘든 길인 것인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에덴에서 나와서 에덴으로 가는 길 또한 에덴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보여주셨다. 그곳은 에덴이다. 이것을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당겨 왔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사는 것, 그것은 결국 기쁨과 구원으로 연결된다. 

니체가 죽인 신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오직 미래만을 보고 현재는 크게 집중하지 않는 것, 하지만 예수님과 성경은 그것을 뛰어넘는 철학을 이야기 하셨다. 

결국 나는 니체가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니체가 참 좋다.